문화라는 이름의것들

[스크랩] 영화 한편.... 태풍

늘푸른재가노인복지센터 2006. 1. 20. 18:42
태풍의 눈, <태풍>엔 없었다
장동건, 이정재, 이미연 주연의 <태풍>
 
▲ 태풍의 영화 포스터
ⓒ 진인사필름
올 겨울 극장가를 강타할 것이라 예측하며 주목을 받았던 작품, <태풍>.

그 배경에 장동건과 이정재 그리고 이미연이 있었다. 여기에 <친구>를 만든 곽경태 감독까지. 이들의 뭉침만으로도 개봉 전까지 많은 사람들의 관심을 받았다. 나 역시 그 중 한 사람이었다. 이 영화가 개봉하자마자 극장으로 달려갈 정도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난 후, 현재 350만명을 넘었다고 하는데 그 속에 내가 있다는 사실에 씁쓸했다.

이유는 다름아니라, 너무나 전형적인 한국형 블록버스터였기 때문이다. 언제부터인가 블록버스터 하면 남북 소재의 영화들이 곧잘 등장했다. 아마도 한국형 블록버스터의 원조인 <쉬리>의 영향 때문일 것이다. 거기에 <공동경비구역JSA>의 성공과 <웰컴투 동막골>의 선전에 힘입은 결과물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태풍>은 불안해 보인다. '소문난 잔치 상에 먹을 것이 없다'는 속담에 한 예로 추가될 듯싶다.

영화는 150억이라는 어마어마한 자금이 투자되어 완성된 영화이다. 게다가 장동건의 변신, 이정재와 이미연의 오랜만에 스크린 외출 등 갖가지 화제를 낳았지만 영화의 스토리 구성과 짜임새는 현격히 떨어진다.

물론 배우들의 연기야 나무랄 데 없었지만, 그것마저 스토리의 허술함에 힘없이 무너지는 느낌이다. 이미연의 경우 나름 대로 연기 변신을 시도했지만 영화의 부속품, 즉 여배우가 등장하지 않으면 안 된다는 강박관념에 형성된 캐릭터라는 인상을 받아 같은 여성으로서 씁쓸하다.

ⓒ 진인사필름
우선 영화의 내용을 살펴보자.

타이완 지룽항 북동쪽 220km 지점 해상에서 운항 중이던 한 선박이 해적에게 탈취당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국정원은 탈취당한 배에 위성유도장치인 리시버 키트가 실려있었다는 사실과 그 선박을 탈취한 해적이 북한 출신이라는 정보를 입수하고 비밀요원을 급파한다.

한반도를 날려버리겠다는 일념으로 하루 하루를 살아 온 해적 '씬'(장동건)은 리시버 키트를 손에 넣고, 그의 오랜 계획을 실행하려 한다. 20여 년 전, 가족과 함께 남한으로 귀순하려 했으나 중국과의 관계를 우려한 한국 정부의 외면으로 북으로 돌아가게 되고 그로인해 온 가족이 몰살당하는 모습을 지켜 본 '씬'은, 그때부터 증오를 키우며 살아간다. 그의 가슴엔 오직 뿌리깊은 분노와 어릴 적 헤어진 누나 '최명주'(이미연)에 대한 그리움만이 있을 뿐이다.

한편 비밀리에 파견된 해군 대위 '강세종'(이정재)은 방콕 등지에서 씬의 흔적을 뒤쫓다 러시아까지 추적망을 좁혀간다. 암시장에서 매춘부로 살아가고 있는 '씬'의 누나 '최명주'를 만난 '세종'은 그들의 기구한 가족사를 알게 되고, 추격을 거듭할수록 '세종'의 마음에는 '씬'에 대한 연민이 자리잡는다.

ⓒ 진인사필름
하지만 삼척 대간첩 작전 중 조국을 위해 전사한 아버지에 대한 아픈 기억을 갖고 있는 '세종'은 자기가 무슨 일을 해야 하는가를 정확하게 알고 있다. 마음은 통하지만 친구가 될 수 없는, 말을 건네기보다는 총을 먼저 겨눠야 하는, 적도 친구도 될 수 없는 두 남자의 대결이 벌어진다.

영화의 스토리는 기본 상업적인 구도를 따라가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씬과 강세종, 그리고 최명주의 캐릭터가 영화 속에서 매몰되고 있다는 점이다. 앞서도 최명주 캐릭터를 이야기 했지만 한석규, 고소영이 주인공으로 분한 <이중간첩>에서의 고소영 캐릭터를 보는 듯하다.

아무런 힘이 없고 나약한 여성의 모습, 그 속에서 그 여성으로 하여금 연민을 느끼게 하는 역할.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다. 게다가 곽경태 감독은 친구가 될 수도 미워할 수도 없는 씬과 강세종의 대결구도에서 있어, 감독의 지나친 주관적인 감정 개입으로 뚜렷하게 보여지지 않고 그냥 흘러버린다.

특히 씬의 가족사. 탈북 가족의 이야기를 시작으로, 그가 왜 남한을 가만 두려 하지 않는지, 의미 부여를 다정다감하게 설명해주고, 그의 아픔을 너무나도 세세하게 설명하려하다 보니 상대적으로 강세종의 캐릭터 설명이 약했다.

즉, 강세정은 씬을 위해 만들어진 캐릭터가 되었고, 그러다 보니 젊은 나이에 해군장교가 된 것은 그 뒤에 그의 아버지에 의해서라고 말하지만, 그 부분은 영화에서 그다지 중요하게 작용되지 않는 듯하다.

ⓒ 진인사필름
이렇다보니, 대결구도가 무너지고, 씬의 절대적인 복수의 대상조차 희미해져 버린다. 그 모습은 결말 부분에서 충분히 알 수 있다. 전반 부분에서 그토록 분노와 증오에 휩싸인 씬이 무기력하게 무너지는 설명은 너무나 미약해 설득력을 잃었다.

또한 씬을 추격하면서 강세종이 최명주에게 씬의 가족사 이야기를 듣고 연민과 갈등을 하는 부분은 너무도 신파적이다. 감독 자체는 다른 영화와 달리 신파적인 요소를 배제시키려 했던 것 같지만 너무나 유치하기 짝이 없는 설득이다.

물론 감독의 노력이 엿보이지 않는 것은 아니다. <쉬리>나 <태극기를 휘날리며>처럼 상업적인 구도를 그대로 가져와 만들지는 않았다. 나름대로 남북 문제에 있어 탈북자 문제, 한반도 비핵화 등 사회적인 이야기들을 다루고 있다는 점에서는 그의 노력에 공을 표하는 바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런 소재들을 끌어와 씬과 강세종에게 투영하려 했던 부분이 오히려 재미를 반감시킨 게 아닐까 한다. 결과적으로 감동은 반으로 줄게 되고, 왜 저들이 대결구도를 취하고 있는지 조차 애매모호해져 버린 것이 아쉽기만 하다.
출처 : 영화 한편.... 태풍
글쓴이 : 달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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