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하도 겨울답지 않아
뉴스엔 15년만에 한강이 얼지 않을 것 같다느니
이번 여름엔 사상 최고로 더울거라느니 호들갑이다.
봄 같은 겨울, 어디선가 어부사시사 연주가 들려오는데
가만히 듣자니 어느 해인가 다녀갔던 보길도가 떠오르니
부질없이 상념에 젖는다.
역사에 관심을 가지며 알게된 역사 너머의 역사...
역사를 히스토리(history)라 하는 것은
그저 아름다우면 그만이던 승자의, 남자의 기록이라는 의미일진대
우리의 역사의 뒤안길, 지금에야 가십꺼리 일 수도 있으련만
부끄러움과 애틋함이 혼돈되는 안타까움이 가득한 그 곳,
언젠가 오블 지기님들과 거닐며 공감하면 좋겠다 싶은 곳이 있다.
보길도가 그곳이다. 다녀간 적 있으실까?
아름다운 자연과 애애한 역사가 혼재된 곳.
바다가 우선 떠오른다.
맑은 물색, 얕은 수심, 고운 모래, 한적함,
시원한 방풍림, 탁 트인 시야, 점점이 수놓인 섬들...
며칠은 머물러도 좋을만치 마음에 드는 곳.
제법 유명하다는 예송리해수욕장 해변의
몽돌에 쏴아~ 하고 쓸려가는 물소리는
또 얼마나 사무치던지.
지금은 그곳을 떠났지만 몇 해 전엔
그곳에 자발적 가난을 선택한 보길도 사내 한 분 있었다.
<보길도에서 온 편지>의 저자인 시인이자 소설가인 강제윤님이다.
마음속 민중운동가인 그는 '동천다려'라는 당호의 조그만 거처를 지어
이곳에서 음악도 듣고 글도 쓰고 민박으로 여행객도 맞고...
그렇게 세상을 살아내었다.
시인이 눈 멍들지 모르니 쏟아짐을 조심하라던 그 별무리는
이십여년전 지리산 장터목의 하늘에서 본 이후
가장 시야에 가득하고 쏟아질 듯 낮아 선명하였지.
제 혼자 흐르는 음악을 두고 차 한잔 나누는 여유란...
민박의 방 한켠 앉은뱅이 책상에 다소곳한
시인의 두 권의 책이 주는 느낌은 또 어떻고.
강제윤 시인의 동천다려(뒤안길은 고산 윤선도의 세연정으로 이어진다.)
어부사시사 연주 들으니 당시 시인과 나눈 고산 선생 이야기가 기억난다.
조선중기 시인이며 시조문학의 대가였던 분. 음악, 의술 등에도 능했다 하니
요즘으로 치면 그야말로 박학다식한 이어령 선생 같은 분이라고 할까.
선생을 소개한 글을 잠시 인용해 보면...
(http://myhome.naver.com/dangmea)
고산 윤선도(1587 선조20∼1671 현종12)선생은 조선중기에 호남이 낳은 대시인(大詩人)이며,
조선조 시조문학을 마지막 장식한 대가로 알려진 분이다. 선생은 학문만이 아니고
철학을 위시해서 경사서 제자백가(經史書 諸子百家)에 통달하여 정치, 학문, 예술 전반에 걸쳐
조예가 깊고 천문, 음양지리, 복서, 의약 등 다방면에 통달하셨으며, 원림경영과 간척사업을 하여
오늘날까지 전한다. 그 중에서도 특히 시조문학을 으뜸으로 꼽는다.
해남 六賢의 한 분으로서 향현사(鄕賢祠)인 해촌서원(海村書院:해남읍 해리 소재)에 배향된
선생은 전란과 당쟁이 소용돌이치는 격랑의 사회현실 속에서도 강직한 성품의 선비로
조선시대의 손꼽히는 지성이셨다. 정치의 중심에서 나랏일을 맡았을 때는 정성을 다하여
국가경영의 대도를 역설하셨고, 의롭지 못한 일을 보면 결코 용납하지 않으셨다.
그 결과 세차례에 걸쳐 십수년의 유배생활을 하시는등 유배와 출사, 은둔으로
이어져 있지만, 그 근본은 오로지 나라를 위하는 정신과 백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이를 잘 형상화하여 국문학의 비조로서 우리에게 귀중한 문화유산을 남겨주신 분이다.
한시는 물론이고 국문시가는 값진 국문학의 보배이다.
고산 선생은 자기를 포함한 주변에서부터 국가사회에 이르기까지 강한 실천의지를
지니었는데, 특히 노비, 어민, 농민, 빈자 등 여러 방면의 사회적 약자에 관한 관심이
높을 뿐 아니라 각 방면에 있어서도 상당히 높은 전문지식을 갖고서 이론을 폈다.
인생의 덕목(德目)을 벼슬에 두지 않고 수신(修身)과 근행(謹行) 및 적선(積善)에 두고 있고
인자한 행실과 검소절약을 제1의 덕목으로 가르치고 있다.
실제도 얼추 그리 평가되는가 보다.
그렇지만 그 이면, 역사의 이면은...
차라리 선생의 시조가 이만한 수준이 아니었다면 하는 아쉬움이 진하다.
보길도엔 고산 선생의 말년의 흔적이 남은 세연정이 있다.
아름다움 뒤에 그려지는 씁쓸함이 짙은 곳.
권력자와 민초의 애환이 서려 있는 곳.
시선으로야 아름다운 한국의 정원미을 온전히 느낄 수 있으며
한 켠 선생의 역작으로, 춘하추동 사계를
각 10수 총 40수의 시로 엮은 어부사시사 시비가 서 있는...
<보길도에서 온 편지>의 저자 강제윤 시인의 말을 빌지 않더라도
이곳의 고산은 이미 선생 소개글의 사회적 약자를 배려한 낭만적 시인이 아니라
섬주민을 억압하고 지배한 한명의 권력자일 뿐인 것이다.
시인은 책에서 임진 병자 양대 전쟁으로 도탄에 빠진 민중을 구제하기는 커녕
막대한 부를 자기 왕국 건설에 쏟아부은 그를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아름다움의 이면, 역사의 이면이 그럴진대 그것에 무슨 가치를 둘 것인가를 말하고 있다.
고산의 소왕국 '세연정' 전경.
당대 최고 수준의 별서조원으로 사진상 회수담은 인공의 못이며
정자 좌우로 동대 서대가 있어 수십의 무희가 춤을 추곤 했다 하니
그 권세가 어떠했을지 가늠할만 하겠다.
그럼에도 고산의 세연정 정원미란
화려하기는 하나 담양의 소쇄원이나 식영정이 갖는
담백한 품격은 느껴지지 않았다.
보길도엔 망끝전망대라 하여 일몰을 감상하는 곳이 있다.
그 아름다움 사진으로는 대신할 수 없음이 아쉬운데
저 아름다운 일몰을 바라봄에,
죽지 못해 살아갔을 민중의 핏빛이 오버랩 되어 마음이 무거웠다.
호사롭기는 고산에 못지 않은 꽤나 유명한 견공, 봉순이다.
<보길도에서 온 편지>에서 꺽정이의 일편담심 순정을 받던 그...
처음에 으르렁거리는 것이 일단 주인과 인사 나누는 것을 보고는
아주 순한 양이 되는데 참 영리하구나, 하였다. 봉순당 당호가 참 이뻤다는...
좀 무거운 이야기지만 역사는.
보이는 역사와 보이지 않는 역사를 읽어내는 안목을 가지라 한다.
겉으로의 화려함이 아닌 내면의 깊이를 이해하라 가르친다.
역사와 진실이 다른 것인지
역사와 진실이 달라질 수 있는 것인지
역사와 진실은 하나인지.
어부사시사의 맑고 그윽한 노랫말이
그저 맑고 그윽한 노랫말로 들리는
그런 아름다운 역사를 기대하며...
어부사시사 中 '춘사' 3연
정동희 곡 / 국악동인 5+ 연주(가야금 이연경)
춘사(春詞) 3연 / 원문
東風(동풍)이 건듯 부니 물결이 고이 인다
東湖(동호)를 도라보며 西湖(서호)로 가쟈스라
두어라 압 뫼히 지나가고 뒷 뫼히 나아온다
춘사(春詞) 3연 / 노랫말
東風(동풍)이 건듯 부니 물결이 고이 인다
돛 달아라, 돛 달아라. 돛을 달아라.
東湖(동호)를 도라보며 西湖(서호)로 가쟈스라.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지국총 지국총 어사와.
압 뫼는 지나가고 뒷 뫼는 나아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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