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이런저런 매체에 김훈의 첫 소설집이라고 광고되고
있는 '강산무진(江山無盡)' 이란 책, 들어보셨죠?
사실, 전 김훈이란 작가의 글은 처음이에요. 서점에서
책을 처음 봤을 때도 "칼의 노래를 썼다는 그 작가인감?" 하면서
구입을 했을 정도니까요...
여덟 편의 단편 소설이 실렸더군요.
그 중에서 <문학동네, 2003년, 여름호>에 실렸었던 '화장'에
대해 얘기하려구요.
이걸 감상문이나 신작 방에 올려야하나, 어쩌나 잠깐(?) 고민도
했지만 "참 좋으네, 읽어봐~" 하고 할 수는 없을 듯 해서 그냥
수다방에 올릴 게요.
그렇다고 작가의 작품이 나쁘다는 얘기는 결코 아닙니다.
뭐랄까, 읽는 내내 불편함 때문에 힘들었다고 할까요..?
문학 평론가 신수정씨의 해설을 빌려 볼게요.
김훈은 남들이 쉽게 알지 못하는 전문용어로 소설적 언어를
대신함으로써 소설적 언어에 대한 낭만적 환상을 깨뜨리고 전혀
새로운 형태의 서정을 획득하고 있다. 소설이 될 수 없다고 생각
되는 언어로 소설을 써보는 것, 이는 그이 소설의 배면에 깔린
가장 기본적인 형식충동이다.
그의 첫 단편이자 대표작이라 할 <화장> 에서도 이러한 성격은
두드러진다. 뇌종양으로 투병하는 아내의 육체의 마멸과정과
화자의 회사 동료인 추은주의 육체에 대한 매혹이 화장품회사
상무인 화자의 직업세계의 업무처리와 더불어 세 겹으로 전개되
고 있는 이 소설은 죽음이나 매혹과 같은 형이상학적 테마를 화장
품 회사의 광고시안 결정과정상의 직업적 전문용어와 병치시켜나
가는 솜씨가 대단하다. 이 두 측면은 육체의 서로 다른 양상에 다름
아니다.
회사 동료 추은주를 보며 '아, 살아있는 것은 저렇게 확실하고
가득 찬 것이로구나 싶어서' 마음 속으로 조바심을 치면서
뇌종양에 걸린 아내의 뇌사진을 보며 '뇌는 아직 형태를 갖추지 못
하고 흐느적거리는 원형질이었다...저것이 아내였던가' 저것이 아내였
구나를 되뇌입니다.
<화장>에서 가장 안타까운 대상은 뇌종양으로 고생하다 죽은 아내도
아니고 언젠간 사라질 육체의 유한함에 가득한 추은주도 아닌 화자
자신인 듯 합니다.
주인공은 아내가 사망한 다음, 자신의 육체를 무겁게 짓누르는 오줌을
배뇨하기 위해 사우나와 비뇨기과를 찾고, 장례 첫날 빈소에서 웃고 있는
아내의 영정 앞에서 혼자 라면을 먹지요... 그리곤 장례식 부의금으로
딸의 혼수비용으로 진 빚을 갚을 생각을 하고 퇴사하는 추은주의 사표
수리를 하며 근무평점을 묻습니다...
너무나도 현실적인 소설 속의 언어들, 아니 현실적이다 못해 메마르고
참혹하기 까지한 언어들로 읽는 동안 무참해지는 기분이 들었지요.
처음 접해보는 김훈의 작품이라 그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를 한다거
나 하는 것은 못하지만 다만, 중년의 나이에 받아드리지 못할 것도 없으며
그것은 초월이나 인내도 아닌 그저 수락일뿐이라는 해설자의 말에는
공감을 합니다.
이 작품에서 그의 전문 직업용어가 아닌 매혹적인 시의 용어로 씌여진
문장을 하나, 소개할까요? 소리내어 읽어보세요. 무엇이 느껴지는지..
당신의 이름은 추은주. 제가 당신의 이름으로 당신을
부를 때, 당신은 당신의 이름으로 불린 그 사람인가요.
당신에게 들리지 않는 당신의 이름이, 추은주, 당신의 이름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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